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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물" 장애 편견 이겨낸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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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물" 장애 편견 이겨낸 예술가들

입력
2015.05.1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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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의수화가' 석창우·'클론' 강원래

장애 딛고 일어선 이야기 들려줘

"불쌍하게 보는 시선이 자립 방해

신체 특성일 뿐 극복 대상 아니다"

가수 강원래(왼쪽)씨가 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상봉 홀에서 열린 '스페셜 아티스트 페스티벌'에서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으로부터 아들의 돌 선물로 그림을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이화창조아카데미 제공
가수 강원래(왼쪽)씨가 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상봉 홀에서 열린 '스페셜 아티스트 페스티벌'에서 '의수화가' 석창우 화백으로부터 아들의 돌 선물로 그림을 받은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이화창조아카데미 제공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 이삼봉홀에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울려 펴졌다. 홀을 메운 100여명의 관객들은 숨을 죽인 채 피아노 연주에 심취했다. 은은한 선율의 여운이 감돌던 홀은 연주자의 한 마디에 이내 웃음바다로 변했다. “방금 저한테 물병을 건넨 분은 저보다 지능지수도 낮고, 노래도 못하는 매니저 오빠에요. 격려 박수 쳐주세요.”

연주의 주인공은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인 이희아(30)씨였다. 태어날 때부터 양손의 손가락이 각각 두 개밖에 없었던 이씨는 이미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이씨는 이날 이화창조아카데미가 주최한 ‘스페셜 아티스트 페스티벌’에 강연자로 나와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10여년 전 각종 방송과 언론에 나와 유명세를 탔던 그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음악가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전반부의 삶은 전적으로 어머니 우갑선(60)씨의 공이 컸다. 선천성 장애 외에도 이씨는 악보를 읽거나 외울 수 있을 만큼 지능이 높지도 않았다. 이씨가 연필이라도 쥐었으면 하는 마음에 여섯 살 되던 해 피아노 앞에 앉혔을 때 우씨는 딸이 뇌혈관 기능장애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간단한 산수조차 할 수 없어 화음계산이 안 된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도 참석해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했다. 이화창조아카데미 제공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도 참석해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연주했다. 이화창조아카데미 제공

남들이 고개를 가로저을 때 우씨는 딸에게 동요 ‘나비야’를 오른손과 왼손으로 나눠 수천번씩 건반을 두들기게 했다. 그런 식으로 화음을 완성했다. 이듬해 이씨는 전국학생음악연주평가대회 유치부에서 비장애인들과 겨뤄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매일 10시간이 넘는 혹독한 연습 끝에 지금은 50여곡의 음악을 완벽하게 연주한다.

음악 인생 후반전은 이씨 스스로 책임졌다.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며 마음이 들떴던 2003년 성악가 조수미씨와의 만남이 전환점이었다. 이씨는 유네스코, 대한적십자사 등을 통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조씨를 보면서 음악이 갖는 파급력을 알게 됐고, 북한 장애인 처우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씨는 “지난해 호주 시드니를 방문해 북한의 청각 장애 청소년 30명 앞에서 연주를 했다”며 “그들이 귀로 음악을 들을 순 없지만 내 마음이 영혼을 통해 전달됐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면서 이씨의 연주는 한층 깊이가 더해졌다. 그는 “팝송 ‘유 레이즈 미 업’을 들려달라는 요청이 많은데 누군가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느낌이 들어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며 “마찬가지로 장애인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장애인들의 자립을 방해한다”고 강조했다.

이씨처럼 이날 행사에는 장애의 편견을 이겨낸 예술인들이 나와 자신의 삶을 담담히 풀어 놓았다. ‘의수화가’ 석창우(60) 화백은 전기사로 일하던 1985년 2만2,900V 전류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서른 살 나이에 장애인이 됐지만 석씨는 “수술 후 깨어났을 때 아내가 ‘두 팔만 잘려서 다행’이라고 한 말을 듣고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안타까워하는 주변의 반응이 오히려 의아스러웠다고 한다.

화가의 재능을 발견한 건 당시 네 살이었던 아들 덕분이었다. 새를 그려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쇠갈고리 손에 연필을 끼워 그림을 그렸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후 여태명 화백에게 배운 동양수묵화에 서양의 누드크로키를 접목한 ‘수묵크로키’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고, 전 세계를 돌며 개인전을 37회나 열 정도로 유명화가가 됐다. 지난해 소치 장애인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는 856㎝X210㎝ 화선지 위에 선수들의 모습을 그려내 4만여 관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남성듀오 ‘클론’의 멤버 강원래(46)씨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며 “못생긴 사람에게 ‘괜찮아요. 못생긴 외모 꼭 극복하세요’라는 말을 안 하는 것처럼 장애 역시 신체의 특성일 뿐 극복의 대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장애인 예술가들의 위트와 발랄함으로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강연회는 이씨가 건넨 마지막 당부로 끝을 맺었다. “제 일기에 ‘내 손가락은 보물이다. 이 보물을 네 개나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적혀 있네요. 여러분, 열등감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보물이니까 캐내세요.”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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